제2차 이라크 전쟁과 미국 영국군의 작전

2003년부터 시작된 미국에 의한 제2차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아직 존재하고, 중동을 위험에 빠뜨리고, 이슬람 테러(알 카에다)의 온상이되고 있다는 구실로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부대가 유엔 결의에 의해 공격을 시작한 전쟁이다.


- 이라크 침공 작전(일명 "이라크 자유 작전")




2003년 3월 20일 새벽,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과 그 일족 이라크 지도부를 겨냥한 핀 포인트 폭격으로 시작되었다. 발사 된 수십 발의 순항 미사일은 후세인과 그 일당이 있다고 생각되는 민가를 파괴 시켰지만, 후세인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고, 후세인 살해에 실패한 미국은 본격적인 침공 작전을 실시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는, 이날 전세계에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포함한 무장 해제와 후세인 정권의 유효성에 대한 무력 행사를 한 일에 대해 정당성을 텔레비전 연설로 호소했다.


또한 이라크도 후세인 자신이 이라크 국영 TV에서 자신이 아직 건재하며, 철저 항전이라는 결의를 표명하고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했다.



3월 20일 밤, 쿠웨이트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미국, 영국 육군이 이라크 영내로 진격을 시작, 좌익은 미국 육군 제5군단, 우익에는 미국 제1해병 원정군(영국 제일 기갑사단 포함)을 갖추고, 총 병력 15만명, 전차 500량은 수도 바그다드로 진격을 시작.


여기에 대항하는 이라크 군은, 정규군 40만명, 전차 2,600대, 장갑차 1,800대, 자주포 200대, 화포 약 1,900문, 무장 헬기 100대 외에 공화국 수비대 8만명, 통칭 후세인 친위대라고 하는 특수 공화국 수비대가 2만 5천명, 이에 더해 민병대가 있었다.




미국 영국 군은, 좌익의 제5군단이 유프라테스 강 서안 강의 사막을 단숨에 돌파하고, 바그다드 공략을 목표로하고, 우익의 제1해병 원정군은 국경 근처의 루메이라 유전을 제압하면서 제5군단의 동쪽을 진격, 좌우 양측에서 바그다드를 동서로 포위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전략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세이며, 그 작전의 침공 스피드가 요구되었다.


그것은 이번 작전이 후세인 정권 타도가 목적이며, 이전의 이라크 전쟁에서는 후세인이 피할 시간을 주었던 것을 교훈으로 새겼기 때문.


따라서 미군은 세계 최강의 전차라고 하는 M1A1 전차를 선두로 "썬더 런"이라는 전격 전술을 채택.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도시 공성전은 다른 부대에 맡기고, 제5군단의 주력 인 제3보병 사단은 진격하여 적을 제압하는 임무에 전념, 또한 항공 부대가 제3보병 사단과 전투 상태가 되기전에 빠르게 진격한다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다.



이 전술은 성공하여, 제5군단은 순조롭게 진격, 2일 후에는 바그다드 남쪽 나자프 근교까지 도착.


순항 미사일을 포함한 대규모 공습에 의해 지상군의 진격은 계속되었지만, 이 나자프 주변에서는 이라크 군이 방어전을 펴고 철저 항전을 벌여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 벌어졌다.


4월이 되면서, 항공 제공권을 완전히 넘겨준 이라크 군 방어선은 차례 차례로 무너졌고, 4월 3일에는 특수 부대가 바그다드 시내에 잠입, 동 4일에는 육군의 본격적인 바그다드 공략 전이 시작, 7일에는 마침내 바그다드 중심부를 제압, 4월 9일 마침내 수도는 함락(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는 이라크 군이 완강하게 저항했고, 미군은 영국군에게 이를 맡기고 진격했지만, 2주 후인 4월 7일에 드디어 함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