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공중 쟁탈전 미군 전투기들

지금과는 파워가 사뭇달랐던 세계 최강대국의 전투기.


2차 세계 대전 당시는, 지금과 같은 무게가 실리지 않았던것 같다. 당시는 독일군과 일본군이 초반전에 기세를 살려 하늘을 주름 잡았었던 것 같고, 후반으로 갈수록 연합군에 밀리는 상황으로 전개.


그래도 당시 하늘을 누볐던 미군 전투기들의 기종과 성능은 과연 어땠을까?




▶ Brewster F2A 버팔로

첫 비행 : 1937년 12월

생산대수 : 509대


미군 최초의 근대적 단엽 전투기.

그때까지 복엽 전투기가 주력이었던 함상 전투기를 현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이 시작. F4F와 경쟁에서 이겼고, 제조, 개발을 진행했지만, 그 후 F4F의 성능이 향상되어 주전 자리는 도로 빼앗겼다. 성능은 추축국 전투기에 뒤처지지 않았지만, 일본군 전투기에는 완패하여 일선에서 물러났다.


기대를 배반한 낮은 성능이었지만, 핀란드에 수출 된 기체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대 소련과의 겨울 전쟁에서 수적 우위의 소련군과 분전. 수많은 에이스 파일럿을 만들어 "하늘의 진주"라고 극찬.



▶ 그루만 F4F 와일드 캣

첫 비행 : 1937년 9월

생산 대수 : 7,722대


미국 해군의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의 주력 함상 전투기. "그루만 철공소"라고 할 정도의 견고함이 특징으로, 높은 급강하 성능이나 방탄 성능을 가졌다. 반면 느리고 둔한 운동 성능으로 대전 초기에는 전투기와의 전투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대전 중반 이후, 미군에 대 전투기 전법이 철저하게 된 것으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F6F에 주력기 자리를 양보했지만, 소형의 호위 항공 모함 등으로 종전까지 운용되었다.



▶ 그루만 F6F 헬캣

첫 비행 : 1942년 6월

생산 대수 : 12,275대


가장 많은 일본전투기를 격추 시킨 미국 전투기. F4U가 실패했을 때의 보험기로 개발되었지만, F4U가 개발에 힘들었고 견고한 디자인의 기체가 대전 중기 이후의 주력 함상 전투기가 되었다.


일본군 조종사에게도 대적할 수 있는 공중전 성능을 자랑하며, 가장 강한 상대가 되었다. 튼튼한 기체 구조와 방탄 성능으로 파일럿의 신뢰도 두터웠다. 반면 2000마력 급 엔진을 장착하면서도 속도는 600km/h 정도 느렸지만, 이에 대해 일본 전투기가 너무 속도가 느려 문제가 되지 않았다.



▶ F4U 코르세어(Corsair)

첫 비행 : 1940년 5월

생산 대수 : 12,571대


전후에도 각국에서 활약 한 고속 전투기. 정면에서 보면 W형으로 보이는 역으로 가르는 날개가 특징. 2000마력의 고출력 엔진에 대형 프로펠러의 조합으로 700km/h 이상의 고속으로 비행. 그러나, 그것때문에 착함이 어려운 초기에는 육상 기지에서만 운용되었다.




대전 후반 부터는 항공 모함에서 운영되었고, 대지 공격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전후에도 한국 전쟁에서 사용되었고, 1969년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사이에서 일어난 "축구 전쟁"에서 F4U끼리 교전. 



▶ 그루만 F7F 타이거 캣

첫 비행 : 1943년 11월

생산 대수 : 364대


이색적인 쌍발 함상 전투기. 좁은 항공 모함에서 운용하는 함상기는 단발기인 것이 상식이었지만, 넓은 태평양에서 장대 한 이동거리 및 범용성을 갖게하기 위해 쌍발 대형기가로 되었다. 대지대함 공격도 할 수 있는 기체로 개발 된 이 기체는, 12.7mm 기관총 × 4, 20mm 기관총 ×4는 대 화력과 빠른 740km/h의 속도를 발휘하는 고성능 기체.



▶ 그루만 F8F 베어 캣

첫 비행 : 1944년 8월

생산 대수 : 1,266대


대전에는 늦었지만, 최강의 왕복 함상 전투기. F6F와 같은 계통의 엔진을 장착하면서 기체 크기는 한층 작아졌고 F6F의 4.2톤에서 3.2톤까지 슬림화했다. 대 마력 엔진과 소형 기체가 일치, 높은 비행 성능을 실현. 왕복 기계로 최고 수준의 기체가 되었다.



▶ 라이언 FR 파이어 볼

첫 비행 : 1944년 6월

생산 대수 : 66대


왕복 엔진과 제트 엔진의 복합 동력 전투기.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트 엔진에 주목했지만, 초기 제트는 연비가 나쁘고, 신뢰성도 낮았다. 그래서 왕복 엔진과 제트 엔진을 모두 탑재하고, 각각의 장점을 살리려고 한 것이 복합 동력 방식의 프로젝터이다..





▶ 맥도넬 FD-1(FH-1) 팬텀

첫 비행 : 1945년 1월

생산 대수 : 62대


미 해군 최초의 제트 함상 전투기. 차세대를 겨냥한 미 해군은, 1943년 8월 30일에 제트 함상 전투기를 신흥 맥도넬 사에 주문한다. 웨스팅 하우스의 터보 제트 엔진을 날개 밑에 2개 장착, 기종에 12.7mm 기관총 4정을 장착한 기체로 완성되었다. 최고 속도는 771km/h를 발휘.



▶ 그루만 XF5F 스카이 로켓

첫 비행 : 1940년 1월

생산 대수 : 1대


시작만으로 끝난 쌍발 함상 전투기. 고속 함상 전투기는 군의 요청에 대해 그루만사는 당시의 함상기로서는 이례적으로 쌍발 기체에 응했다. 좁은 배안에서의 수용을 고려하여 쌍발이면서 기체는 단발 기계 수준의 크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완성된 기체의 속도는 예상을 밑도는 600km/h 정도로 엔진 카울로 인한 착함시의 시야 불량이나 작은 기체고의 탑재 연료 부족 등으로 불합격되었다.



▶ 벨 XFL1 에아라보니타

첫 비행 : 1940년 5월

생산 대수 : 1대


육군의 P-39를 바탕으로 개발 된 함상 전투기. 벨사는 해군의 고속 전투기 계획에 P39를 개정한 설계를 제출. 기본 구성은 P-39와 마찬가지로 액체 냉각식 엔진을 동체 중앙에 배치하고 연장 축을 통해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다. 무장은 프로펠러 축에서 발사하는 35mm 기관포와 주익의 7.7mm 기관총 ×2.



▶ 보토 XF5U

첫 비행 : 1942년 11월

생산 대수 : 2기


"플라잉 팬케이크"라는 별명을 가진 원반형 전투기. 보토 사는 원반 날개가 단거리 이착륙 성능과 낮은 성능이 뛰어난 점에 주목했다. 해군의 지원을 받아 V173 실험기를 제작한다. XF5U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V173은 시험 결과, 불과 6m에서 이륙이나 강풍시의 공중 정지도 가능했다. 이에 따라 해군은 함정에서 이륙 가능한 STOL 전투기로 XF5U 개발을 지시. 그러나 전례없는 형태로 개발은 난항. 회사가 F4U 생산에 쫓기게 된 것도 있고, 시제품 완성은 1945년 8월 20일이 되었다. 결국 제트기 시대의 도래로 비행도 되지 못하고 스크랩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