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때문에 나치 독일과 일본은 패전했나?

제2차 세계 대전은 자원 전쟁이었다고 할 만큼 치열했다. 그 중에서도 석유는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였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의 최대 목표는 네덜란드 령 동인도, 현재 인도네시아의 삭유 자원의 획득에 있었다.


- 나치 독일


<독일은 루마니아 유전과 풍부한 인조 석유를 등에 없고 개전초기에는 파죽지세로 전 유럽을 점령해 나갔다>




독일도 자국에서는 거의 석유는 미미한 것으로, 뭐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특유의 화학 공업의 힘으로 인조 석유 생산 실적은 당시 세계 제일이었다.


여기서 인조 석유란...

석유와 같은 성질의 유전자를 가진 나무로부터 석유 생산 유전자를 분리한 다음, 유전자 운반체(Plasmid)에 이식하여 유전자 DNA를 만들어 광합성 세균에 주입한다. 이것이 광합성 작용을 하면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미생물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미생물이 석유와 같은 형질을 이어받아 석유를 생산하게 되는 것....



1923년에 독일에서 프란츠 피셔와 한스 로푸셔에 의해 발명, 석탄을 가스화시킨 것을 화학 반응에 의해 액화 CTL/석탄 액화 기술로 개발됨...


인조 석유는 가격 경쟁력이 없었지만, 전시에는 독일은 영국 해군에게 해양이 봉쇄 될 것으로 예상했었기 때문에, 안전 보장의 관점에서 연구가 추진되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나치 정부의 보호 아래, GTL 기술을 이용한 인조 석유가 양산되어 군용/민간 연료를 CTL에서 조달 할 수 있었다.


독일의 인조 석유에 대해서는, 일짝부터 상당한 힘을 쏟고 있었으며, 1935년에는 90만 톤을 생산하였고, 1937년에는 260만톤까지 증산, 제2차 세게 대전이 시작된 1939년에 독일의 석유 공급량의 46%를 담당할 정도로 상당한 증산을 이루고 있었다.


독일 석유 공급지로서 유명한 것은 루마니아, 특히 플로이에슈티 유전이 유명하다.



1944년 후반이되어서, 소련군의 진격과 뒤늦게 서부 전선도 지상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독일의 석유 시장은 초가을부터 급속하게 악화되기 시작한다.


미국과 영국의 전략 폭격을 맞고 인조 석유 생산은 주춤하게 된다.




- 한편 일본은...


일본도 독일에서 도입 한 기술을 바탕으로 석탄에서 인조 석유의 생산이 진행되었지만, 기술력과 물자가 부족했고, 공장도 미군에 의해 폭격 당해 계획대로 되지 못하고 실패에 그쳤다.


<석유는 외지에서 운송이 필수적이지만, "함대 결전"에 고집한 일본 해군은 호위를 하지 못했다>


독일에서 기술 이전 한 석탄 액화 기술에 따라 인공적인 석유 생산을 목적으로 한 회사가 있었고, 보조금이 투입되어 유택했었지만, 전쟁에 돌입한 결과, 자재 부족 등이 발목을 잡았다. 그로인해 플랜트의 가동률도 부진했고, 230,000kl의 생산 계획이었는데 7,000kl 밖에 생산하지 못하였고, 그대로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일본은 지하 자원도 적었고, 석유, 철광석 등의 물자를 거의 외국과 세력권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연합군에 의해 하늘을 완전히 내준 일본군은, 외지에서 자원을 수송하는 선박의 대부분을 잃고, 항공기 연료와 함선을 움직일 수 있는 중유 공급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되고 있었다.


<전황은 호전없이 그대로 패전의 길로...>


외지에서 석유를 수입 할 방법을 잃은 일본군은 전쟁 말기, 군함도 비행기도 만족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인조 석유 기술은 일본에게는 너무 이른 기술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