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망상이 깃든 나치의 강제 수용소

아돌프 히틀러...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정치인이며, 나치의 당수이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중심 인물이다.


인종주의, 우생학, 파시즘 등에 영향을 받은 선민 사상(나치즘)에 따라 북방 민족이 세계를 지도 할 것이다라고 줄곧 주장했다.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살해 명령을 내렸던 독재자...

학살 된 유태인은 500~600만으로 여겨지고 있다.





◆ 히틀러의 범죄 행위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나치당 정권하의 독일이 행한 홀로 코스트의 상징. 아우슈비츠에서 매일 보내져오는 수감자의 효율적인 살인 수단으로 "가스실"을 연구하고, 실제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인 의사들은 수감자를 다양한 실험의 시료로 다뤘다. 이른바 "인체 실험"이다.


- 벨제크 강제 수용소

이송되어 온 유대인을 사용하여 가스실 실험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일산화탄소가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전차에서 나온 배기가스를 관을 통해 가스실로 보내는 것이 효과가 좋아 이 방법으로 가스 도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

베르겐-벨젠은 "휴양 수용소" 등으로 불렸었지만,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냈다. 사인으로 가장 많았던 것은 주어진 음식의 적음에 의한 쇠약으로 인한 죽음. 또한 병사도 매우 많았다. 결핵, 이질, 장티푸스, 급성 폐 질환, 가려움, 디프테리아, 소아마비, 뇌염, 외과 질환, 정맥염 등이 유행. 위령비에 따르면, 5만명의 소련 병이 여기에서 고문 당하고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 부헨 발트 강제 수용소

대전 말기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여러번의 치열한 전투를 뚫고, 시체도 많이 봐왔을 미국 병사들이 부헨 발트 강제 수용소의 참상에 말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부패한 죄수의 시체가 여기저기 쌓여있고, 안뜰에는 알몸의 남녀 노소의 시체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는. 살아있던 죄수들도 살이거의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는...


- 헤움노 강제 수용소

유대인 45만명을 멸종 시킬 목적으로 설치되게 된 것이 헤움노 강제 수용소이다. 그러나 헤움노에는 가스실이 설치되지는 않았고, 소멸 작전에는 세 개의 가스 트랙이 사용되었다.




- 다하우 강제 수용소

다하우에서는 악명 높은 "극초단파 실험"과 "냉각 실험"이 진행됐었다. "극초단파 실험"은, 고도의 저기압에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실험이다. 실험에 사용 된 죄수는 대부분이 사망하고, 살아남은 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냉각 실험"은, 차가운 바다에 떨어진 조종사를 구출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실험이며, 차가운 물에 넣었다가 죄수를 동사시킨 후 소생 할 수 있는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 플로센뷔르크 강제 수용소

1945년 4월 중순이 되면서 수용소에서의 철수가 시작되고, 죄수들은 다하우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게 되었다. 그들은 도보로 이동했는데, 그 이동 중 약 7,000명이 사망했다. 종종 죄수들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걷고, 물도 음식도 비바람을 피할 장소도 없이 행진이 계속되었고, 탈락 한자는 총살당했다.




- 그로스-로젠 강제 수용소

직사각형 형태의 강제 수용소였다. 삼엄 한 경비, 폭행, 살인, 굶주림 등 여러가지로 다른 나치 강제 수용소와 같지만, 그로스-로젠 수용소의 특징적인 것은 점호 광장에 있던 독특한 모양의 종탑의 존재였다고 한다. 이 종을 사용하여 죄수들에게 집합 등을 걸고 있었다는.


- 힝차토 강제 수용소

총 13,600명의 정치범을 수용했다. 힝차토의 죄수들은 매우 조악한 환경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공포 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문과 공개 처형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