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반전으로 이끈 2차 대전의 대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중인 1944년 6월 6일 연합군에 의해 실행 된 나치 독일 점령 하의 서유럽 침공 작전이다. 연합국은 상륙 후 파리를 해방, 프랑스 전역을 해방시키게 된다.


- 300만명의 병력이 상륙작전에 참가


노르망디 상륙작전(Invasion of Normandy)는, 제2차 세계 대전중인 1944년 6월 6일 연합군에 의해 행해진 나치 독일 점령 지역이었던 서유럽 침공 작전. 정식 명칭은 "오버로드 작전"이었다.





결국 300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코틴틴 반도의 노르망디에 상륙 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 작전이다.


<도버성과 파드 칼레>


- 칼레는 영국의 도버 해협과의 최단 거리


독일군은 칼레일까 노르망디 일까를 놓고 저울질 했었는데, 어쨌든 두 지점을 놓고 완전히 확정하지는 않았다. 히틀러는 칼레 상륙을 가장 경계했었고, 칼레의 방비를 굳건히 하고있었다.



지도를 보면, 칼레는 영국 대륙에서 가장 가깝고, 상륙하기에도 적합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도버성에서 날씨 좋은 날에는 칼레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 도버성 지하

도버성은 독일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견고한 벙커가 요새화되어 있었다. 현재는 요새의 일부분을 견학도 할 수 있다고 한다.


- 다수의 이중 스파이 존재

당시 독일은 영국에 약 50명의 간첩을 심어두고 있었지만, B1A(MI5의 방첩 부서)는 그것을 모두를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일부 사람을 이중 스파이로 고용. B1A는 매우 우수하다고 알려져있었고, 독일이 영국에 보냈던 스파이 모두 셀제로는 MI5의 손에 넘어왔다는 것을 독일측은 끝까지 몰랐다.


MI5는 그들을 통해, 독일 정보 기관에 침공 작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흘리려는 계획을 수립하였고, 결론적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개요>




- 먼저 내륙에 3,000명이 낙하산으로 투입

본 전략은 야간의 낙하산 부대의 하강으로 시작, 이어서 상륙 예정지에 대한 공습과 함포 사격, 이른 아침부터의 상륙용 주정에 의한 적진에 대한 상륙으로 바뀌었다.


- 노르망디에 대량으로 물품을 공급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그곳에서 대량의 물자를 하역하고, 프랑스 해방을 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 프랑스 해방까지의 경로

노르망디로부터 상륙, 프랑스 파리를 노리고 진군하여, 그곳에서 독일 방면으로 전개할 예정이었다.



- 로버트 카파가 찍은 사진 1장

스페인 내전, 중일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선, 제1차 중동 전쟁과 제1차 인도 차이나 전쟁의 5개 전쟁을 취재 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장 카메라 인 "로버트 카파"의 대표적인 1장. 긴박한 상황에서 촬영 한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 흔들림이 심하다.



- 상륙하기를 기다리는 군인

상륙 할 때 육지와 최대한 가깝게 위치하려고 했지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수영을 해서 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믿기 어려운 수송선의 수

엄청나게 많은 수송물자가 단번에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의 대량의 물자가 영국을 통해 프랑스로 이송되었다.



- 착륙 성공후 연합국

엄청난 수송선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사용되었으며,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고 명명되었다.



- M4 전차 양륙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양륙되는 M4 전차. 전차는 무게가 무거웠기 때문에 대형 선박이라고해도 그다지 많이 실을 수는 없었다. 



M4는 독일군의 전차보다 열등했지만, 미군의 공업 생산력에 의해 전장에 대량으로 보내졌었기 대문에, 모든 지역에서 M4를 사용하여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최강 타이거 전차에 M4 전차 4~5대가 붙어 겨우 이겼다고.



- 독일군과 연애 한 여성들의 굴욕

독일군이 물러가고...독일군과 연애했던 여자는 삭발을 당하고, 시내를 끌려다니며 수모를 당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