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인 꽃미남 7인

멋지다라는 말은...이 사람들에게?


겉으로의 모습이 잘 생긴 사람은 이 세상에 많지만, 행동을 수반하여 성과를 내는 잘 생긴 남자라는 것은 그렇게 많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그것이 시대를 바꾼 위업이고, 또한 여성이 한눈에 반할 것 같은 외모라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무엇이 위업이냐? 어떤 얼굴이 잘 생긴 것이냐? 는 그야말로 시대, 지역,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 7명은 대체적으로 수긍 할 수 있는 인물 들이다. 반론은 있겠지만~~


1. 조지 고든 바이런(영국)


얼짱을 넘어서 많은 여성을 미치게 한 남자.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은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당시 영국에 소용돌이 치고 있던 기회주의를 비판하고, 세계 문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특히 유명하다.


바이런의 여자 편력은 당시부터 유명했으며, 또한 관계 된 여자들은 대부분 불행으로 몰아간 것으로 비판을 받았었다. 때문에 너무나도 위험한 미남으로 남아있다.


2. 벅시 시겔(Benjamin Siegel, 미국)


배우 수준의 외모를 가진 미남 갱.


벅시 시겔은 미국의 갱이다. 젊은 시절부터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 강도, 공갈, 마약, 살인 등 뭐든지 닥치는 대로 실행, 안하무인격의 캘리포니아의 어둠의 세계를 주름 잡는 거물이되었다.


시겔은 당시 아직 소규모였던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도시로 주목, 수요가 예상되는 카지노 손님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호텔 건설에 착수. 라스베가스의 발전에 불을 붙인 인물이다. 행동은 무지막지 했지만, 비즈니스 감각은 최고였다는.


성격은 거칠었지만, 화려하고 멋지고 사교적으로 무엇보다 배우 수준의 꽃 미남이었기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의 인생 끝은, 조직의 내부 분열로, 집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가 총격으로 살해되었다.


3. 카이사르(로마 제국)


당시 유명한 "대머리 난봉꾼".


너무나도 유명한...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화정 로마의 정치가이며 군인.


젊었을 때부터 군대를 이끌고 전 갈리아를 통일. 그 후 제1차 삼두 정치의 일각이 되었고, 내전을 통과 한 후에는 종신 독재관이 로마의 제정에 크게 방향을 이끈 인물이다.




카이사르의 호색한은 유명했으며, "원로 의원의 아내의 3분의 1을 유혹하여 빼앗았다"고 하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많은 여자를 녹였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4. 아르튀르 랭보(프랑스)


가장 순수하고 조숙한 천재.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6세에 가출하여 파리로 와서, 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 소년 같은 싱싱한 감성과 순수하지만 일종의 광기, 그리고 말의 운용 감각은 압도적이었고, 10대에 이미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었다.


당시 쓴 "지옥의 계절", "일루미네이션"은 랭보의 순수한 감성이 응축되어 그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 때 랭보는 27세의 시인 폴 베를렌과 만난다. 베를렌은 당시 신혼으로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랭보의 매력에 홀려 아내도 아이도 잊고 16세 소년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18세가 된 랭보는 그의 곁을 떠나려고 했지만, 격앙된 베를렌은 권총 2발을 발사. 한 발은 왼쪽 손목에 명중, 결국 베를렌은 체포되고 만다. 


유명 성인조차 매료 되었던 소년의 요염한 매력....뭐라고 할까? 막장 드라마라고 해야할까?


5. 퍼시 비시 셸리(영국)


스캔들 속에 살았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는 영국의 시인. 첫 번째 인물인 조지 바이런과 동 시대의 같은 낭만파.


카톨릭에서의 해방을 호소 한 "무신론의 필요"를 쓰고, 위험한 사상을 가졌다고 해서 경찰의 감시를 받게되는 신세. 아내와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리엄 고드윈의 딸 메리와 사랑에 빠지고, 아내 해리엇에게 "3명이서 살자"고 제안 할 정도로 엉뚱한 면이 있었다는...


셸리와 메리, 그리고 왜 붙어다니는지 모르는 메리의 여동생 클레어 쿠레몬트는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조지 바이런의 곁에 몸을 의지하게 된다.


클레어 쿠레몬트는 곧 조지 바이런에게 넘어가버리고....


그 후 아내 해리엇은 셸리 이외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여 자살로 마감했고, 셸리는 메리와 결혼. 그 후 2명은 이탈리아 각지를 전전하지만, 마지막은 선박 사고로 인하여 익사하고 말았다.


6. 이오시프 스탈린(소련)


희대의 독재자의 젊은 시절의 "불장난"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은 그 유명한 혁명 소련의 독재자.


볼셰비키의 핵심 멤버로 러시아 혁명을 완수, 레닌 사후의 세력 다툼을 극복하여 독재 체제를 깔고 추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공산주권을 유럽 전역에 확대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대 숙청을 감행하여 대량으로 살상을 자행한 사나이.


태어난 장소는 현재의 조지아로, 29세의 나이에 동향인 카테리나 스외니제와 결혼 자녀를 두었지만, 곧 스와니제는 병사.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고, 태어난 아이에게 스탈린은 평생 냉담하게 반응했다는.


그 후 1910년의 유배 중에 마리아 쿠자코바라는 여자와 불륜을 저질러 사생아를 낳기도 했고, 1913년의 북극 마을에 좌천되었을 때는 리디아 뻬레푸이기나라는 이름의 13살 소녀와의 사이에 2명의 아이를 낳기까지 했다. 


야심 넘치는 꽃미남은 어딜가나 여자가 있었다는....




혁명 이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스탈린은, 1919년에 친구 세르게이의 딸 나제디다 아루리에와 결혼,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아루리에는 갑자기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이 살해했다고 믿는 사람이 절반 이상.


7. 체 게바라(아르헨티나)


전세계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게릴라의 카리스마.


체 게바라(1928-1967)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룬 혁명가.


지금도 반미, 반 권력, 반 폭정의 상징적인 존재로, 특히 중남미에서 그의 존재는 전설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그의 카리스마는 압도적으로, 지도력, 내뱉은 말의 무게, 그리고 입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력, 그것은 그의 "권력에의 저항"의 삶 자체이며,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는 이유다.


그의 초상화가 유명 아이콘화 되어있는 것처럼, 그 용모는 단정하고 상당한 미남. 미남과 그 엄청난 인기를 받았지만, 그 자신은 평생 아내 이루데 데아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