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한방.
아군이면 모를까 적군이라면 뒷덜미가 서늘해질 것이다. 전장에는 이러한 스나이퍼들은 항상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적은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군대의 사기를 좌우하게 만든다.
실제로 역사상 놀라운 솜씨의 스나이퍼는 그렇게 소리없이 다가와 정확하게 처리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정말 "악마", "저승 사자"라는 칭호가 맞을 듯.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저격수들....어떤 유명한 스나이퍼들이 있었나?
1. 쟝 타오팡(張桃芳, 1931-2007, 중국)
6.25 당시 214명의 유엔군을 쏜 스나이퍼. 쟝 타오팡은 중국 장쑤성 출신으로 중국 인민 지원군의 군인이었다. 우리로서는 적이었지만, 중국 인민군으로 봐서는....당연히 영웅.
처음으로 전선에 배치....11발을 쐈는데, 모두 빗나가고 말아 그날 저녁 왜 총알이 벗어났는지를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듭하여 다음날은 1명을 맞출 수 있었다고...그 2주 후에는 9발 가운데 7명을 명중. 그 후 32일 동안 214명의 유엔군 병사를 사살했다고 되어있다. 같은 해 중국 정부에서는 "이등 저격 영웅", 북한으로부터는 "일급 국기훈장"을 수여했다고.
2. 쥬바(? ~ 2014, 이라크)
쥬바는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PKO 군에 저항을 계속했던 이라크 반군의 에이스 저격수이다. 미군을 저격하는 영상으로 유명해졌었다.
지금은 삭제되어 없어졌지만, 동영상에서는 미국인 27명을 저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라크 반체제 선전 영상이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2013년부터 2014년에, ISIS에 의해 살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빌리 싱(1886~1943, 호주)
"갈리폴리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호주의 에이스 스나이퍼로 중국계 호주 군인이다.
원래 농장에서 해충 구제를 위한 저격 기술에 능했던 싱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ANZAC(호주 뉴질랜드 군단)에 지원해 터키 갈리폴리에 참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스나이퍼로 인해 공생하고 있던 영국군과 ANZAC군은 싱을 오스만 제국 저격병과 대항하게 했다.
싱은, 첫날 9명을 저격하는 등 즉시 에이스 저격수로 등극하여 "갈리폴리의 암살자"라고 불리게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50명을 사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장의 병사에 의하면 201명을 저격했다고 한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이므로 상관들은 150명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
4. 루드밀라 파블리첸코(1916~1976, 소련)
소련이 낳은 세계 최고의 여성 저격수.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군은 다수의 여성 저격수를 채용하여 전선에 투입.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이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10대 시절부터 비범 한 사격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파블리첸코는 대 독일전(러시아의 대 조국 전쟁)이 발발하자 저격 부대에 지원. 제25저격 사단 제54저격 연대에 배속된다.
1941년 8월부터 오데사 방어전에 종군 한 다음, 세바르 스토폴리 요새 방어전에서 활약. 공식 기록으로 309명의 독일군 병사를 저격했다고 되어있다.
5. 프랜시스 '페기' 페가마가보(1892~1952, 캐나다)
원주민의 혈통을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에이스 저격수로 활약. 페가마가보는 캐나다 원주민 오부지와 족의 남자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부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캐나다 군대에 자원입대하게 된다.
페가마가보의 군대는 1915년 4월 독일군이 처음 독가스를 사용한 제2차 이부루 전투에 참가, 10여명의 독일군을 저격. 그 후 솜 전투, 파스 샹달 전투와 대규모 전투에 참가하여 기록은 378명의 독일군을 저격했다고 되어있다.
6. 바실리 자이체프(1915~1991, 소련)
바실리 자이체프는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맹활약한 소련의 저격수이다. 2001년에 공개 된 할리우드 영화 "에너미 엣드 게이트(Enemy at the Gates)"에서는 주인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시에는 해군에 있었는데, 원래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자랐기 때문에 1942년 9월부터 저격 부대에 소속. 1942년 6월부터 시작된 스탈린 그라드 전투는, 시작부터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독일고 소련 모두가 엄청난 인원과 물자를 투입 한 소모전으로 전개. 자이체프는 시가전에서 독일군을 차례로 저격했고, 한달 조금 넘어서는 225명의 독일군을 저격.
7. 마테우스 헤체나우어(1924~2004, 독일)
나치 독일군 최고의 저격수. 독일군 저격수로 최고로 많은 소련 병사를 저격한 것이 헤체나우어다.
1943년 19세까지, 알프스에서 교육을 받은 후 제3산악 사단에 배치되어 동부 전선에 종군. 즐겨 사용한 총은 카라비나 98 쿠르츠에 6배 스코프를 붙인 것과 게베르 43에 4배 스코프를 붙인 것.
이 두 자루의 총으로 헤체나우어는 345명의 소련 병사를 저격.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최다 기록이다. 그 공적이 평가되어 일급 십자 훈장과 기사 십자 훈장 등을 수여, 1945년 5월에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 수용소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8. 토마스 플런켓(?~1851, 아일랜드)
베이커 총의 성능의 우수성을 증명 했었던 놀라운 솜씨의 스나이퍼. 토마스 플런켓은 1804년부터 시작된 반도 전쟁(스페인 독립 전쟁)에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
반도 전쟁은, 이베리안 반도를 점령한 프랑스 군대에 스페인과 포루투갈이 붕기를 일으킨 전쟁.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영국군이 상륙하지만, 나폴레옹 본인이 지휘하는 20만 부대가 도착, 영국군은 후퇴하기 시작.
라이플 연대에 소속되어 있던 플런켓이 일약 그 이름을 올린 것은, 1809년 1월에 일어난 카카베로스 전투. 단발식 베이커 총 600야드(548미터) 떨어진 곳에서 프랑스 군 준장 오귀스트 콜베르를 저격하는데 성공. 그리고 2번째로 콜베르의 부관을 저격. 이 2발의 저격으로 프랑스 군은 혼란되어 철수. 카카베로스 전투는 영국군의 승리로 끝이나게 된다.
9. 크리스 카일(1974~2013, 미국)
"라마디의 악마"라고 이라크 병사들이 두려워 한 놀라운 솜씨의 저격수. 크리스 카일은 2003년부터 시작된 이라크 전쟁에 네이비 실즈의 일원으로서 종군, 특히 저격수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이라크 정부군과 알 카에다 계 무장 조직과의 싸움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공식 기록 160명(비공식 255명)을 저격했다. 카일은 제대 후 민간 군사 기업에 근무하는 한편, 공연과 집필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 한 회고록(American Sniper)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3년 카일은 PTSD을 앓았던 전 해병 에디 레이루스로부터 사살되었다.
10. 시모 해위해(1905~2002, 핀란드)
"하얀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 최고의 스나이퍼. 시모 해위해는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자 겨울 전쟁에서 활약 한 "전설의 스나이퍼"이다.
원래 시모 해위해는 20세에 군에 입대하기 전에, 현재 핀란드와 러시아 국격 근처 마을에서 사냥꾼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총 솜씨를 연마했었다.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 겨울 전쟁이 발발. 해위해는 제6중대에서 콧라 강 주변으 방어전에서 영하 40도의 가혹한 환경속에서 "가급적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소련 병사를 저격하는" 임무를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