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라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무민(Momin), 산타클로스, 자일리톨이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일단 인구는 370만명이었던 핀란드는, 인구 1억 7,000만명의 소련을 상대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 겨울 전쟁, 단 36대의 전투기 부대
1939년 11월 말, 소련의 제안을 거절한 핀란드에 소련은 역사적인 도시, 테리오키(현재는 젤레노고르스크)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 소련의 제안은 독립을 포기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핀란드가 보유하고 있던 것은, 포커, D21 전투기 36대, 그 밖에도 전투기가 있었지만, 구식으로 도저히 전력외의 것이었다.
몇일만에 간단하게 핀란드를 접수할 것으로 예상 한 소련군은, 폭격기에 의존했지만, 이상하게 피해가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북극 핀란드에서는 영화 30도를 밑도는 날씨로 인해, 핀란드의 호수는 거의 전부 얼음으로 얼어붙었다는...
이 말인즉슨, 핀란드에는 자연적인 활주로가 1000개 이상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폭격 정확도가 낮았던 소련 폭격기였는데, 설마 핀란드 전역의 호수를 폭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핀란드 전투기 부대는 전투기는 적었지만, 지리적으로 많은 이점을 안고 있었다.
어쨌든 쪽수는 적었지만, 핀란드 파일럿의 숙련도가 높았고, 죽음을 각오한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핀란드 전투기 1대당 소련의 전투기 10대를 감당했을 정도였다고.
그러나 원래 소련의 항공 병력의 차이는 10배 이상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핀란드의 처절한 싸움에서도 그렇게 전략적으로 승리하지는 못했다.
105일간의 겨울 전쟁 끝에, 마침내 1940년 3월 13일, 마침내 힘이 다 떨어졌던 핀란드는 불리한 휴전 협정을 맺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전력 차이로 이 정도까지 끌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핀란드의 하늘의 싸움은 곧 제2라운드를 맞이하게 된다.
- 계속 전쟁, 아군은 노란 표적 비행기만
핀란드 전투 비행단에 다시 전투 대기 태세의 명령이 떨어진 것은, 1941년 6월 16일의 일이었다.
독일 바르샤바 로사 작전과 함께, 추축국에 포함되지 않을 수 없었던 핀란드에 대해, 6월 22일 다시 소련은 공격을 가해왔다.
이른바 계속 전쟁의 시작이었다.
먼저 겨울 전쟁일 때는, 핀란드는 자국의 무기 생산은 형편없었고, 대신에 노획 한 무기의 개조나 손상된 무기의 수리는 달인의 경지에 올라있었다고.
계속 전쟁에서는 소련의 전투기도 고성능의 전투기들이 투입되었지만, 핀란드 공군도 독일이나 영국에서 들여온 항공기들을 조합, 짬뽕으로 하여 개조를 실시.
어쨌든 핀란드도 소련군에 맞서 하늘에서 피터지는 전투를 계속했는데...세계는, 이 전쟁에 하늘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전투기들이 뒤섞여 싸움을 한 전투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여러 나라에서 건너온 전투기들이 많이 사용되어졌다는.
핀란드 공군은 아군을 식별하기 쉽게하기 위해 전투기 몸통에 노란 띠를 그려넣었다고 한다. 노란색이 사용되고 있는지, 그것이 핀란드 하늘에서 적과 아군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하도 전투기 모양이 다양해서 였을까?
계속 전쟁에서도 핀란드 공군은 1대10으로 싸우는 불리한 전투속에서도 맹활약을 펼처. 소련을 물리치게 된다.
소련의 스탈린은 무조건적으로 핀란드에게 항복을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끝까지 했으면, 당연히 핀란드가 무너졌겠지만, 그럴수는 없었던.
그리고 6년간의 전쟁으로 사망 한 군인 이외의 핀란드 인은 약 2000명.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없이 희생자가 나온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교전국으로 매우 적은 희생자 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늘의 에이스들이 핀란드 하늘을 지켰기 때문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