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흑사병)는 중세 유럽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유럽에서 14세기부터 유행 한 페스트는,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도시, 시에나를 중심으로 활동 한 시에나 파의 화가들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염병이 예술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14세기의 이탈리아에서는, 국외의 상선이 빈번하게 출입하고 있던 시칠리아에서 페스트의 감염이 퍼지기 시작했다고되어 있다. "모든 병은 하나님으로부터 초래 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에나의 화가들은, 시칠리아에서 유행하고있는 페스트를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이다"라고 생각했다.


교회도 그 생각을 장려했고, 많은 성직자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있다"는 이유로 감염자에 대한 축복을 거부했다. 대부분의 신자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와 참회에 전념하고, 사람들의 사상과 가치관이 변화되어갔다.



원래 시에나 파의 화가는 종교적인 그림에 있어서도, 심리와 사상에 대한 호기심을 그 그림에 반영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 그러나, 페스트의 유행에 따라 시에나 파의 화가들에게 죽음에 대한 사상이 형성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높아지면서 교회에 대한 강한 신뢰가 심어졌다.




결과, 페스트의 유행에 따라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을 얻은 성직자가 화가들의 후원자가 되었고, 화가들이 무엇을 그릴까의 결정권은 성직자들에게 맡기게 되었다는 것.


시에나에 있는 푸블리코 궁전의 벽화를 그린 화가, 타데오 디 바톨로는, 시에나의 전통을 계승 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후원자 인 성직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그가 그린 작품 인 "The Funeral of the Virgin"은, 페스트 유행전까지의 시에나 파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테마가 강하게 나타났으며, "성모를 돌보는 사도의 한사람 한사람도,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시에나 파의 화가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반 레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 유명 화가의 대부분들도 페스트의 위협을 경험하고있다. 페스트의 위협은 화가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 "죽음은 가까이에 있고 피하는 것은 무리다"라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제자 조르조 바사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음"을 머리속에서 지울 수 없다"라고 적고있다.